예배는 우리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예배란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이 만남은 인생을 바꾸고, 가정을 바꾸며, 교회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며, 나라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실제적인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이 예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시간이었습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모여서 새롭게 시작한 넘치는교회였기에 많은 도전들을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이런 질문들 '왜 우린 수련회에서만 열심히 에배하고 은혜받는가?', '매주 예배를 수련회처럼 할 수는 없는가?', '영화는 2시간 30분, 3시간도 지루해 하지 않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는데 예배가 지루하다면 뭔가 잘못된것 아닌가?' 앞에서 과감하게 도전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것을 드리겠다는 마음으로 모인 청년들의 예배는 3시간, 4시간 그리고 5시간 6시간 그 이상까지 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긴 예배 시간 속에서 놀랍게도 지루함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순간 우리에게 '시계를 보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에 교회에서 시계를 없애 버리는 결정까지 했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뛰어난 찬양팀의 연주도 아니었으며, 설교자의 매력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목마름으로 가득찬 공동체의 예배는 매우 역동적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상처를 치유해주셨습니다.
넘치는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맞는 예배에 대해서 고민해왔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생명력 있는 역동적인 예배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해가며 성경적, 신학적 토대에 기반한 변화를 시도해왔습니다.
넘치는교회의 예배는 미국 신학자 로버트 E. 웨버의 예배의 4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세워진 예배로, KWMC 사무총장으로 계시는 이승종 목사님과 예배사역 연구소 이유정 목사님, 풀러 신학 대학교 이상훈 교수님을 통해 방향성을 조언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란 없기에, 예배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문제이며 하나님의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이에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과 영이 열릴 수 있는 방법을 '예배시간에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변화를 고민해왔습니다. 특별히 다음세대를 위해 '강하고 깊은예배'가 이 시대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는 이전과 다른 새롭게 예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동체적으로 깨닫게 하셨습니다. 강하고 깊은 예배라는 새로운 예배의 방식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다음 세대들을 돕기위한 시대적인 대안이 되었습니다."
강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찬양하며 반응 할 때에 큰 함성과, 큰 찬 양소리, 뜀 뛰며 찬양하고, 춤추며 반응하는 예배의 방법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반응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일들 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성경적인 기쁨의 표현들입니다.
넘치는교회는 '다음 세대는 선교대상이다'라는 관점으로 다음 세대에게 맞는 문화적 시도들(찬양의 음악 장르적 변화 등)을 다각적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중고등학생, 초등학생 크리스찬 통계는 5% 미만으로 집계되며 이 수치는 선교사를 파송해야 하는 '미전도 종족'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이미 다음 세대들에게는 선교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세상 다른 어디보다도 다음 세대들에게 그들이 향유할 수 있는 '대안적 문화'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과 문화적 코드로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으면서도 세속적이지 않은 대안적인 문화를 제시해야 할 거룩한 사명을 교회가 가져야 한다고 저희는 믿습니다. 어쩌면 그 대안적 문화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 아이들을 클럽과 노래방으로 내몰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배안에 스트레스 해소적인 성향이 있다고 한들 그것 역시 교회안에서 품어 주어야 할 범위 안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저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찬양하는 본질 위에 다음 세대의 코드에 맞춘 문화적 변화, 음악 장르적 시도, 춤 출 수 있는 환경,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큰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왔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됨, 피조물의 하나님 앞에서 찬양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적 도움입니다. 피조물은 조물주 의 목적을 위해 지어졌으며 그 목적은 바로 그 분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창1:1, 사43:21) 오늘날 세상의 많은 테라피들도 큰 소 리와 춤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가령 산에가서 소리를 지르라고 한다던가, 춤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소리와 춤은 하나님을 향한 기쁨을 표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룩한 도구이자 본래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찬양과 경배의 표현들입니다. 다윗처럼 말입니다.(삼하 6)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표현이 축구경기의 기쁨과 흥분보다 못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손흥민의 한 골 넣었을 때에 함성과 춤추며 뜀뛰는 반응보다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기쁨과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이 못하다면 크리스찬은 회개해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즐겁고 신나는 음악에 반응하며 뛰는 것이 단회성이 라면 감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겠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기뻐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감정 그 자체를 넘어선 다윗의 시편 고백과도 같은 위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깊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 깊은 곳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끌어간다는 것이며 위와 같은 강한 예배의 단계를 지나야 영과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에 우리의 영이 받아들일 수 있고 반응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깊은 예배는 성령의 충만한 이끄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그 분의 깊은 사랑에 잠기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깊은 예배의 절정은 바로 갈리디아서 2장 20절인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게' 되시는 진리의 말씀의 이뤄지는 것입니다. 나의 음성은 잠잠해지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되며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한 교제가 이뤄지는 시간인 것입니다. 결국 강하고 깊은 예배의 최상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예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매일 말씀읽고 묵상하며 삶에서 예수님과 동행하고 새벽예배를 지켜온 영성이 있는 한국교회의 건강한 어른 성도들은 하나님 임재의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데 문제가 없지만, 이미 절제력을 잃고 게임중독에 웹툰 중독, 새벽 3-4시 까지 스마트폰 만지다가 잠드는 다음 세대들의 현실을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을 예배의 깊은 곳으로 이끌어가는 갈 수 있기 위해서는 강하고 깊은 예배라는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어느덧 10년째 전국의 다음 세대들을 만나면서 사역해온 오버플로잉 팀을 통해 많은 치유와 회복의 간증들이 있습니다.